수백만 명의 은행고 객 가운데 우선 보통예금 잔고가 5000만원 이상 되는 고객들을 추려 내고 그들의 거주지를 근거로 생활 수준이 높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 유층을 다시 솎아낸다.

이 같은 작업을 통해 K과장이 알부자 1순위로 뽑아낸 사람은 도곡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는 황 모씨. 최근 새로 이사온 황씨는 은행대출없이 현금만으로 7억원이 넘는 아 파트값을 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

핸드폰요금이나 인터넷 이메일요금이 빠져나가는 자동이체 계좌에 50 00만원이 넘는 돈을 넣어 두고 있는 점도 관심을 끌었다.
이자가 거 의 안붙는 계좌에 특별한 목적없이 상당한 돈을 비상자금으로 보유하 고 있다면 상당한 여윳돈을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30대 후반의 젊은 치과의사인 황씨는 이사 전에는 서울 양천구 목동 의 작은 아파트에서 7년 넘게 살면서 병원을 운영해 왔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의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가야 한다는 부인의 성화에 큰 맘 먹고 병원에서 먼 곳으로 이사온 참이다.

그런 황씨에게서 4돈 냄새4를 맡은 K과장은 그와 차 한잔 마실 시간 을 얻기 위해 여섯 번이나 찾아갔다.

K과장은 이미 어느 정도 분석을 끝낸 황씨의 투자 성향과 자산보유 현황 등을 토대로 재테크 방안을 설명한 끝에 마침내 황씨를 PB 고객 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황씨는 우선 2억원의 여유자금을 맡기 고 다른 은행과 증권사 등에 보유한 나머지 여유자금도 곧 K과장에게 맡기기로 결심했다.

◇알부자 찾기 비밀 프로젝트＝은행마다 숨은 알부자를 찾기 위한 비 밀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10년 전만 해도 새로 여는 은행 지점에는 유망 고객 리스트를 팔겠다 는 정보 브로커가 종종 왔었다.

이들의 4정보4는 대부분 지점 근처에 사는 고액 납세자, 타금융기관 거액 예금자, 토지 소유자 명단 같은 초보적인 정보 수준에 불과하지 만 고객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지점에서는 이런 정보를 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외국계 은행들은 외제차를 보유한 고객 명단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 로 영업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최신 전산 프로그램을 이용 해 유망 고객 리스트를 작성하는 은행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은행은 내부전산 시스템에 특정 지역 아파트 이름을 치면 그 아 파트 단지에 사는 모든 거주민의 하나은행 거래 내용과 신용등급이 조회되는 시스템 개발이 끝났다.

K과장도 이렇게 만들어진 시스템을 이용해 황씨의 잠재력을 발굴해냈다.

개인적으로는 대형 아파트 단지 주위의 공인중개사나 골프장 등에서 도 항상 유망 고객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

알부자를 찾아내는 기법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은 전문가들 이 금융거래한 내용이나 다른 금융자산 보유 현황 등을 분석해 리스 트를 작성한다는 점이다.

억대 금융자산 보유자들의 리스트인 4알부자X파일4은 이런 과정을 거 쳐 만들어지고 4부자마케팅4으로 불리는 프라이빗뱅킹(PB) 핵심 자료 가 된다.

◇정교한 분석기법 개발＝후발은행이나 고객 수가 적은 중소형 은행 은 고소득층 발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면 애당초 거액 고객이 많은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다소 느긋한 입장에서 기존 고객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조흥ㆍ신한은행 등 국내 은행은 물론 시티, HSBC은행 등 외국계 은행 들도 알부자를 찾아내기 위한 정교한 전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 고객의 은행 거래 패턴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실제소득과 재산 상태를 역으로 추적하는 방법으로 알려졌다.

이들 은행은 상대적으로 거액 고객이 적어 숨겨진 유망 고객을 선별 해 집중 마케팅을 펼쳐야 할 상황이다.

통계학적으로 말하면 모수(母數ㆍpopulaion)가 부족한 만큼 표본(sam ple)을 잘 선정해 적중률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HSBC은행은 최근 부자들이 많이 사는 서울 광장동 워커힐아파트와 잠 실동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거주자들을 상대로 4금융자산 보유내용4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고객 발굴을 위해 홍콩 본부에서 프라이빗뱅킹팀이 파견돼 국내팀과 고객개발전략을 짜고 가기도 했다.

시티은행도 35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알부자를 발굴하는 시 스템을 만드는 중이다.

조흥은행은 최근 본격적인 PB영업에 앞서 20억여 원의 거액을 투자해 개인자산관리(PFMS)시스템을 개발했다.

고소득층을 겨냥해 △자금이체금액과 건수 △신용카드 사용액 △예금 평잔 △대출 규모 등을 바탕으로 우량 고객을 가려내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을 이용한 PB 고객개발방법은 같은 은행 직원들간 에도 비밀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전략적 제휴관계인 BNP파리바은행과 함께 완전히 차별된 PB고객관리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라고 말했다.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만 넣으면 해당 고객의 거래내용은 물론 숨 겨진 금융자산까지 추정할 수 있는 야심작이 될 것이라는 귀띔이다.

거래고객이 2400만~2600만원에 달하는 국민은행과 거액 고객이 많은 하나은행은 고객발굴 측면에서는 느긋한 편이다.

국민은행은 고객 수가 경제활동인구의 70% 이상에 달하는 만큼 이들 의 거래내용에 관한 통계자료만 잘 가공해도 부자 고객을 찾기는 어 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국민은행도 11월 도곡동 타워팰리스 내에 국내 최대 규모 PB 영업점을 낸다는 계획을 세우고 근처 고층 아파트 주민에 대한 조사 를 비밀리에 끝냈다.

김영일 국민은행 부행장은 "국민은행은 고객이 많고 PB영업 특성상 푸시 마케팅(고객을 발굴하는 마케팅 방식)보다는 풀마케팅(고객이 찾아오게 하는 마케팅) 방식을 써야 한다"며 "다만 더 효율적인 영업 을 위해 지점 근처의 유망 고객에 대한 시장조사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출처:매일경제]